예레미야 31장 22절에는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는 다소 이례적인 예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교회는 이 말씀을 근거로 “여자”는 장길자, “남자”는 안상홍을 의미하며, 결국 장길자가 안상홍을 대신해 드러나는 시대가 예언되었다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성경 전체의 맥락, 신약의 예수님 말씀, 새언약의 실체와는 동떨어진, 비성경적이고 자의적인 해석에 불과합니다.
예레미야 31장은 북이스라엘이 다시 회복되고, 하나님이 새 언약을 맺겠다고 약속하는 장입니다.
특히 31장 31~34절은 신약에서 예수님이 성찬(최후의 만찬)을 통해 완성하신 “새 언약”을 미리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31장 22절의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는 말도, 구약 전체 이야기 속에서 ‘새 언약’과 연결해 읽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자신의 죽음과 부활, 성령 강림을 설명하실 때,
“해산하는 여자의 비유”를 사용하셨습니다(요한복음 16장 20~22절).
이 비유의 뜻:
“해산할 때 여자는 근심하며 아프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제자들은 깊은 슬픔과 두려움을 겪었습니다.
“아이를 낳으면 그 고통을 잊고 기뻐한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나타나시고,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하면서 엄청난 기쁨을 안겨주셨습니다.
이 비유에서:
“여자” = 슬퍼하다가도 예수님 부활과 성령을 맞아 기뻐하는 제자들(교회)
“해산의 고통” =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인한 제자들의 슬픔
“낳은 아이” = 부활하신 예수님(살려주는 생명)과 성령
“남자(구주)” = 부활하신 예수님
“여자가 남자를 안는다” = 성도(여자)가 부활하신 예수님(남자)을 만나 기뻐하는 것. 또는 예수님의 성령이 임한 모습.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
새 언약을 받은 교회의 기쁨을 상징합니다.
과거에는 구약 율법 때문에 죄 사함과 구원의 실체(예수님)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 슬펐지만,
예수님 부활과 성령으로 교회가 예수님을 기쁨으로 영접하게 됨을 예언합니다.
이 예언은 신약에서 그대로 성취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 제자들이 크게 슬펐습니다(요 16:20).
그러나 부활 후 예수님을 보고(요 20장),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여(사도행전 2장) 제자들은 기쁨으로 가득 찼습니다.
하나님의교회는 이 구절을 들어
“여자=장길자, 남자=안상홍이니 장길자가 안상홍을 안는 시대가 예언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해석하면 안 되는 이유:
전체 맥락을 잃어버림
예레미야 31장은 “새 언약”을 이야기하고,
신약에서는 이미 예수님이 그 새 언약을 세우셔서 완성하셨습니다.
“여자”와 “남자”는 교회(영적 공동체)와 그 공동체를 구원하는 메시야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직접 설명한 비유와 일치하지 않음
요한복음 16장에 나온 “해산하는 여자” 비유를 보면 분명히 “제자들”과 “부활하신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장길자와 안상홍”으로 끼워 맞추는 것은 예수님 말씀의 본뜻을 왜곡하는 것뿐입니다.
문자 그대로 특정 인물을 찾는 것은 부적절
성경의 상징 표현은 실제 인물 한두 명이 아니라,
구원 역사 전체(과거 예언→예수님 오심→교회 탄생)를 보여주는 말입니다.
이 예언은 새 언약이 완성된 후에 교회가 예수님을 기뻐하며 영적 교제를 누린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그리고 성령 강림까지의 전체 과정이 “해산→구원→기쁨”으로 이루어졌다는 약속이지,
특정 남자와 특정 여자의 관계를 예언하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따라서 하나님의교회의 주장은 성경 본문과 예수님 비유의 본래 뜻을 벗어난 왜곡된 해석입니다. 정작 성경은 “교회(영적 공동체)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쁨으로 만난다”는 구원의 큰 그림을 보여주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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